[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우리의 광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울한 마음이 들고, 삶의 여정에서 지칠 때, 어려운 순간마다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이같이 초대했다. 교황은 광야에서 보냈던 이스라엘 백성의 황폐한 삶과 불 뱀에 얽힌 에피소드를 전하는 3월 20일 전례의 제1독서(민수 21,4-9)에서 성찰을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배가 고팠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응답하셨다. 또한 (그들이) 목말라하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을 주셨다. 더구나 약속의 땅이 가까워졌을 때, 모세가 보냈던 정찰대는 (그곳엔) 과일이 풍성하고 가축도 많았지만, 키가 크고 힘센 민족이 살고 있으며, 무기도 제대로 갖췄다고 보고했다. 이 때문에 백성 중 일부는 회의에 빠졌고, 죽임을 당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 바라봤으며, 400년 동안의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던 주님의 힘을 망각했습니다.”

종살이하던 과거를 애석해하는 “병든 기억”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정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기 위한 삶,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삶을” 시작했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자 시련이 그들을 압도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삶의 순간에 처하면, 우리는 “이제 그만!” “나는 이제 그만 멈추고 뒤로 돌아 갈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종살이 하던) 과거에 대해서 애석해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기를, 얼마나 많은 양파를, 얼마나 좋은 음식을 먹었던가!”(민수 11장 참조) 하지만 교황은 그런 음식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을 때의 식사, 종살이 시절의 식사였다며, 이러한 “병든 기억(memoria ammalata)”과 왜곡된 향수의 편파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런 것들은 악마가 가져다주는 환상입니다. 악마는 그대가 남겨뒀던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게 해주며, 그대가 아직 주님의 약속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여정의 황폐한 순간에, (그대로 하여금) 그런 것에 마음을 돌리게 만듭니다. 사순 시기의 여정이 이와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인생을 사순 시기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항상 시련과 주님의 위로가 있고, ‘만나’가 있고, (마실) 물이 있으며, 우리에게 먹을 수 있도록 주어지는 메추라기들이 있습니다. (…) 그 음식은 더 맛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종살이의 식탁에서 먹었던 음식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에게 불평하는 것은 영혼을 독살하는 것

교황은 이러한 체험이 주님을 따를 때 우리 모두에게 생기는 일이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지쳐버린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더 안 좋은 일은 하느님에게 불평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불평하는 것은 영혼을 독살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시지 않으며, (자신에게는) 수많은 시련만 주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람은) ”독에 중독되고 우울한 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날 제1독서에 등장한 이스라엘 백성을 물었던 불 뱀은 바로 주님의 여정을 따르는 데 있어 발생하는 인내심의 결여, “중독의 상징(il simbolo dell’avvelenamento)”을 나타낸다.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것

그러자 모세는 주님의 권고에 따라,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놓았다(9절). 이 구리뱀은 하느님에게 불평함으로써 뱀에게 물렸던 모든 사람을 낫게 했으며, “예언적인 존재였고,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

“바로 여기에, 삶의 여정에서 우리 인내의 열쇠, 우리 구원의 열쇠, 우리의 광야를 극복하기 위한 열쇠가 있습니다. 곧,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신부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상처를 보십시오. 그 상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그 상처 때문에 우리는 치유됐습니다. 그대가 독에 중독됐다고 느끼고, 슬프다고 느끼며, 그대의 삶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끼고, 어려움만 가득하고 병으로 채워졌다고 느끼십니까? 그곳을 바라보십시오.”

교황은 그러한 순간에 “보기 흉한 십자가, 다시 말해 실제 현실인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초대했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은 아름답고 예술적인 십자가를 만들고, 어떤 십자가는 금으로, 어떤 십자가는 보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황은 이러한 십자가도 “십자가의 영광, 부활의 영광”을 의미하기 때문에, “항상 세속적 것은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대가 그렇게 느낄 때, 고통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부활의 영광을 보기 전에 말입니다.”

이어 교황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성금요일 예식에 참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 성당에서는 실제 크기에 맞춰, 대리석으로 만든 십자가에 누워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촛불행렬을 했다. “십자가 앞에 도달했을 때,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잘 보거라. 내일이면 부활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지요. 사실 그 당시에는, 비오 12세 교황님의 전례 개혁 이전이어서, 주일이 아니라 성토요일 아침에 부활 예식을 거행했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성토요일 아침, 부활의 종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시려고, 우리의 눈을 물로 씻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영광을 바라보도록 가르치십시오. 우리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거슬러 실망의 말을 내뱉고, 독에 중독되는 좋지 않은 순간에, 어려운 순간에, (그분의) 상처를 바라봅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구리) 뱀처럼 높이 매달리셨습니다. 그분께서 (구리) 뱀이 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 사악한 뱀을 이기시려고 온전히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이 여정을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곧,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가르침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백성처럼,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지치는 모든 순간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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